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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중원미륵리사지~~~!!!

촬영:2013년8월17~18일.

 

어디:충주 수안보 대원 미륵사지.

 

충주시상모면 미륵리, 수안보에서 문경새재로 넘어가는 길 동쪽계곡에서 지릅재를 넘는 곳...

이곳이 미륵대원지다. 여기에 사적 317호인 중원미륵사지(中原彌勒里寺址)가 있다.

미륵사는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된 석굴사원(石窟寺院)이다. 장방형의 아주 큰 가람으로 지난 77년 부터

세 차례의 발굴작업이 있었으나 아직도 많은 수수께끼를 간직하고 있다. 발굴조사시 '미륵당(彌勒堂)',

'명창삼년금당개개와(明昌三年金堂改蓋瓦)'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기왓장이 주변에서 많이 나왔다.

출토된 명문와(銘文瓦)에는 1192년(고려 명종22) 금당의 기와를 새로 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석굴과 목조건물이 소실된 것은 13세기이며, 그 후 복원되었다가 조선초기에도 대중수가 있었고, 또다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8세기 때 다시 수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륵사는 운명이 기구한 절터였다.

언젠가 불이나 몽땅 타고 허물어 졌던 곳이 청주대학 박물관에 의하여 1,2차 발굴이 이루어졌고, 3차는

이화여대 박물관에 의하여, 4차는 다시 청주대학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발굴이 끝난 뒤 미륵리 석불입상은 석굴사원의 주존불로 봉안된 것으로 인정되어 보물 제96호로 지정되었다.

6개의 돌로 조성된 10.6미터의 불상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북쪽을 향해 서 있다.

 

17일 충주호를 둘러 보면서 월악산을 지나

 

중원미륵리 사지 도착~~~!!!

 

 

 

 

 

 

밤이라 마카 3.14다~~~!!!

 

다음 날 구미로 오면서 또 찾아가서~~~!!!

 

 

 

 

 

 

충북 제천시 덕주사의 마애불과 중원 미륵사의 미륵불에는 신라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德主公主)와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의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오고 있다. 

  이에 관해 제천의 덕주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덕주사는 왕건이 신라를 합병하면서 경순왕의 첫째 공주 덕주공주를 감금했던 곳이라 한다.

왕건은 이곳에 덕주공주를 감금하고 세 겹으로 성을 쌓았으며 이곳에 이만여 명의 병사를 주둔시켰다고 하는데 지금의

마방골이 말과 군사들이 주둔을 하였던 곳이라 한다. 

 또한 왕건은 마의태자를 충주의 미륵사에 감금을 했다.  이렇게 떨어져 살게 된 남매는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두 남매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운 혈육의 정으로 덕주공주는 남쪽에 있는 동생의 모습을 그

리며 남향으로 마애불을 조각했고 마의태자는 북쪽에 있는 누이의 모습을 그리며 북향으로 미륵불을 조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륵사지 앞에는 커다란 석탑이 있는데 마의태자가 이곳에 머물던 옛날에는 이 탑 정상(頂上)에 보주(寶珠)를

옥(玉)으로 만들어서 올려놓았다고 한다. 이  미륵사지의 석탑에 있는 보주가 빛을 발하여 해가 뜰 무렵에는 북쪽에 있는

덕주사 마애불상의 머리를 비춰주고, 해가 질 무렵에는 마애불로부터 빛이 나와서 미륵사지 석탑의 보주를 향해서 비쳤

다고 한다.  이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마주 보면서 조석으로 빛을 발하며 서로 이야기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충주의 미륵사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조금 차이가 있다.

신라가 고려에 병합된 후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 일행은 망국의 한을 풀고 권토중래(捲土重來)하기 위하여 병사를 양성할

장소를 오대산(五臺山)으로 정하고 길을 떠났다.  마의태자 일행은 문경을 지나 계속 북상하다가 산간 협곡에 자리 잡은

계곡에서 숙박하게 되었다. 일행이 야영을 마련하고 한밤중이 되자 마의태자는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는데 그날 밤

꿈에 마의태자는 관음보살만났다. 

 관음보살은 “이 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서 서천에 이르는 한터[大垈]가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건조하

도록 하라. 또한 그 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

을 것이다.” 라고 이르사라지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마의태자는 꿈이 하도 신기해서 덕주공주를 불러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공교롭게같은 시각에 덕주공주의 꿈에도 관음보살이 나타나 그와 같은 말을 전했다는 것이다.

이에 두 남매는 곧 맑은 계곡 물에 목욕제계하고 서천을 향해 합장배례를 하여 관음보살의 현몽에 감사를 드렸다.

 다음날 새벽 마의태자 일행이 서쪽을 향해 고개를 한터에 이르러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곳에 파란 별빛을 받고 있는

최고봉을 확인한 후 그 자리에 석불입상을 세우고 마주보는 영봉 밑에 마애불상을 조각했다.

마의태자 일행은 이곳에 미륵사를 짓고 팔 년을 머물렀는데 그 동안 많은 신하가 법도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다.

 덕주공주는 마의태자를 붙잡고 이곳에서 정착하기를 권했으나 마의태자는 애초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일부의 무리를 데리고

오대산을 향해 떠났다. 덕주공주는 이후로도 미륵사에 머물며 마의태자의 안녕을 빌며 평생을 지내다가 입적 하였다.                        

 

                                                                                                                           (원천(참고)자료 : 제천시사)

http://blog.daum.net/omarphoto/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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